손꼽히는 원자력 강국 대한민국

원자력 에너지에 힘이 솟는다?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UAE 수출에 이어 스마트 원자로 판매를 위한 양해 각서 체결까지! 수주 실적 하나 없이 선진국의 기술을 수입하기만 하던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 동안 원전 선진국으로 훌쩍 발돋움했습니다. 지난 60여 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국내 연구자들의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국 원자력 발전의 태동

한국 원자력 발전의 태동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 국토가 초토화된 전쟁이 끝난 후,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력이었습니다. 이승만 행정부는 급박한 전력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원자력 발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 원전을 도입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했습니다. 원자력 관련 기술부터 장비, 인력까지 무엇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정부는 고민 끝에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는 데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원자력 인재 양성을 위해 1956년부터 미국으로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은 귀국하여 한국의 ‘원자력 1세대’로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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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원자로 고리 1호기 탄생하다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당시의 빈곤했던 사정으로는 만족스러운 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어려웠습니다. 연구에 쓸 방사성 물질도 조달하기 어려워서 원자력 연구의 가장 기본인 임계 실험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1세대 연구자들은 조국에 공헌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은 마침내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를 준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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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을 개발해 원자력 선진국으로 도약하다

고리 1호기 준공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은 원전 운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고리 1호기를 설계하고 건설한 웨스팅하우스가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면서 기술 이전이나 교육에 무척이나 인색했습니다. 결국 한국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미국으로 파견되어 있는 동안의 기억을 더듬어 원전 설비와 매뉴얼을 몰래 모사하고 현지 엔지니어보다 몇 배 이상 공부하여 기술적 역량을 쌓아올릴 수 있었습니다.

수입선의 다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정부는 기술 이전에 적극적이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에 신규 원전 건설을 발주했습니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의 원전 설계안이 국내에 도입되어 최고의 한국형 원전인 ‘OPR1000’으로 재탄생했습니다. OPR1000의 설계 중 일부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자신들의 신규 원자로에 적용하기도 했는데, 배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여 역수출한 셈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형 원전의 개선은 계속되어 기술적으로 완전히 자립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등 명실공히 원자력 선진국에 진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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